3CE 무드레시피 매트 립컬러 #218 #221
몇 년 전부터 인스타나 트위터 피드를 내리다 보면 종종 한국의 색조 화장품 제품 사진과 함께 태국어나 베트남어나 러시아어, 그리고 알 수 없는 그림 같은 문자들이 포스트 되어있는 것을 볼 수 있었습니다. 도저히 나의 얕은 식견으로는 이게 어느 나라의 문자이고 무슨 뜻을 담고 있는 것인지 모르겠다고 생각하면서 인스타그램 피드 아래의 번역하기를 터치하면 대부분 제품의 간단한 소개와 그 제품을 판매한다는 내용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어요. 그러고 보면 한국에서 태어나고 자라 화장품을 좋아하는 사람이 된 저는 늘 미국 일본 영국 화장품의 배대지, 구매대행 업체들을 찾아다니곤 했는데요, K뷰티의 열풍(?)이 불면서 이런 한국 화장품을 대리 구매해주는 업체들이 많이 늘고 있는걸 보면 신기한 기분이 듭니다.
많은 한국 브랜드의 제품들이 해외 소비자들의 지갑을 열게 하고 있지만, 반응이나 인기의 척도를 포스트 개수로만 본다면 3CE가 단연 1등인 것 같아요.
처음 3CE의 런칭을 알았었던 때가 언제인지 기억도 안나지만, 꽤나 선입견을 가지고 삐딱한 시선으로 보았다는 것은 기억이 납니다. 굉장히 오만하게도 ‘의류 브랜드도 아니고 보세로 동대문에서 떼어온 옷을 파는 인터넷 쇼핑몰이 무슨 화장품 브랜드를 런칭해?’ 하는 생각이었습니다. 물론 그때 이후로 스스로도의 마음가짐(?)이나 생각들이 많이 변했고 그때 참 어리고 유치하고 오만했다고 생각하지만, 예쁘고 유행에 늘 앞장서는 제품을 마구 뽑아내는 3CE를 보면서 더더욱 ‘흑역사를 또 쌓았구나’ 하여요.
⌁ 3CE MOOD RECIPE MATTE LIP COLOR
#218 MIRRORLIKE | #221 MELLOW FLOWER
17,900원
3CE는 세일을 자주 하지 않는 브랜드이지만 가끔 11번가 같은 오픈마켓에서 1+1행사를 하는 것 같더라구요. 저는 "타고난 매력을 보여주는 내추럴 톤의 차분한 로즈 베이지"의 218 미러라이크와 "핑크와 레드의 경계 선상의 어디즈음 위치한 깊은 장및빛 컬러"의 221 멜로우 플라워를 구매하였어요. 두 컬러 모두 장및빛의, 차분하고 깊은 핑크베이스 컬러라고 안내하고 있었고, 3CE의 안내와 발색만을 철석같이 믿고 구매했는데 생각과는 색감이 조금 다르더라구요.
221번 멜로우 플라워는 핑크와 레드 사이의 장및빛 컬러라고 안내하고 있지만 실제로는 레드와 오렌지 사이쯤 되는 것 같았습니다. 생각보다 훨씬 훨씬 오렌지 기운이 많이 돌고, 의식하지 않고 보아도 객관적인 오렌지 레드이에요. 맥의 칠리같은 느낌으로요. 처음 발색을 해보고, 그 이후에도 거의 매일 쓰면서 마몽드 크리미 틴트밤 인텐스 벨벳레드와 굉장히 비슷한 제형과 색감이라는 생각을 했었는데 실제로 비교해 발색해보아도 221번 멜로우 플라워가 훨씬 오렌지 기운이 많이 도는 레드이고 반면 마몽드 벨벳레드는 핑크 기운이 더 맴돌아요. 질감도 비슷한데 마몽드 제품은 립펜슬-크레용 타입이고 3CE 제품은 입술이 닫는 면이 사선으로 컷팅되어있는 립스틱이라 그런지 입술에 닿는 면적이 넓은 3CE 제품이 더 좋게 느껴지기도 했네요. 실제 립스틱이 도착했을 때에도 생각보다 핑크 기운이 하나도 안 느껴지는데 혹시나 다른 제품으로 오배송된건가 싶었어요. 브랜드의 안내와 상반된 느낌이라 아리송했습니다.
218 미러라이크는 의외로 많이 페일하지 않은 느낌이라 놀랐고 단독으로 발랐을 때에도 입술이 사라진다거나 너무 아파 보여서 당황스럽지 않은, 적당히 차분하고 적당히 옅은 혈색이 비치는 색이었어요. 같은 라인임에도 221번보다 조금 더 딱딱한 질감입니다. 아무래도 색이 연하니까 제조과정에서 배합이 조금씩 달라지나 봐요. 이 제품도 마찬가지로 마몽드의 크리미 틴트밤 인텐스 부케누디와 비슷하다고 생각했는데 부케누디가 아주 약간, 티 나지 않게 더 무른 부분을 제외하면 질감도 아주 비슷해요. 참고로 부케누디는 2017년의 페이보릿으로 꼽았습니다. 정말 일 년 내내 자주 만만하게 썼던 제품이에요. 두 색을 나란히 비교해보면 쓰리씨이 218번이 조금 더 따듯한 코랄의 느낌이 더 돌았어요.
3CE는 이 두 제품을 쿨톤 핑크계열로 안내하는 듯하지만 전반적으로 두 제품 모두 따듯한 톤의 색감이라고 생각합니다. 개인적인 의견일까 싶어 다른 블로거의 스와치도 찾아보고 트위터 칭구의 이야기도 들어보았는데 마찬가지로 노란 톤의 피부 위에서는 따듯한 오렌지 계열로 발색이 되는 것 같아요. 홈페이지의 하단 리뷰에도 핑크가 느껴지지 않는다는 글이 있는 걸보면 저같이 노란 피부톤에는 확실히 오렌지 기운이 많이 드러나나봐요.
물론 두 컬러 모두 단독발색 자체로 예쁘고 매력 있지만 저는 애초에 핑크 기운이 도는 무드톤의, 명도가 다른 립스틱을 겹쳐 발라 그라데이션 할 목적으로 구매한 것이라 이렇게 연출하고 있습니다. 입술 안쪽을 비워두고 입술 외곽 선을 조금 더 넘어까지 218 미러라이크를 채워 바른 다음 손으로 대강 립라인을 스머지시켜 준 뒤 비워둔 안쪽에 221 멜로우 플라워를 슥슥 긋고 입술을 마주 비벼요. 입술 상태가 안 좋을 때나 립밤이 없는 외출시에는 두 제품 모두 두드려 발라주는데 그러면 확실히 각질 부각이 덜하고, 오히려 딱딱한 립스틱이 색과 함께 각질도 입술에 챡, 물리적으로 붙여주는 느낌이라 괜찮아요. 애초에 매트 립을 바르는 것 자체가 입술에 무리가 가는 행위이기에 각질 부각정도는 감수하고 있습니다. 많이 건조하면 위에 립밤을 살짝 얹어주는데 그래도 괜찮더라구요. 밀착력이 나쁘지 않은가 봐요.
화장품을 단순히 사용하기 위해서 산다기보다는 컬렉터의 마음가짐으로 구매할 때가 자주 있습니다. 그래도 요 근래에는 이상한 오기에 취해 신상품이 나오고 한정판이 나오면 안 어울리는 걸 알면서도 구하고 싶어 안달 나던 때는 지났다고 할 수 있어요. 이 제품도 꼭 필요하거나 당장 이 색을 발라야 하는 등의 이유가 있어서 구매한 것은 아니고 마침 1+1 행사를 했고 마침 무드레시피 컬렉션 다섯 가지 색 중 딱 두 개만 마음에 들었고 마침 돈이 있어서 샀습니다. 그래서 제품의 질이 크게 중요한 부분이 아님에도, 기대가 커서 그런지 조금은 실망스럽다는 생각이 들어요. (오버를 보태) 손에 묻지 않는 무독성 크레용 같은 질감이 아쉬웠고 조금 더 크리미한 매트립이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자꾸 들었습니다. 예쁜 것은 분명하나 브랜드에서 의도하고 안내한 색감과 소비자가 실제로 느낀 색감이 아예 달랐다는 것도 아쉽고요. (거듭 말하지만 저는 흔한 노란 피부톤의 사람이고 또 핑크 피부톤의 사람 위에서는 다른 느낌이 나겠지요. )
만만하게 바를 수 있음은 분명하지만, 그냥 아주 평범한 로드샵의 립스틱이라고 생각합니다. 써놓고 보니 말의 어폐가 있는데 이 제품은 로드샵의 아주 평범한 립스틱이 맞아요. 저의 기대가 너무 과했을 뿐.. (미안합니다 늘 조아해요 쓰리씨이) 그러고 보면 저는 다른 로드샵 브랜드보다도 유독 3CE에는 기대하는 것이 많은 것 같네요. 다양한 색감이나 질감 같은 것도 그렇고요. 브랜딩을 훌륭히 잘한 브랜드여서 그 브랜드의 제품보다 감성을 사는 기분도 들고요.
제품은 그저 그랬는데 결국 쓰리씨이 브랜딩 칭찬만 하다 리뷰가 끝나네요.
저와 반대로 딱딱한 질감의 발색이 깔끔하게 잘 되는 무르지 않은 매트립스틱을 찾는 분들께 추천합니다. 케이스도 아주 예쁘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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